Friday, December 16, 2016

'사도(思悼)', '효(孝)'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사이


 보통 한국인들에게 '추석'은  즐거운 연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이 공감하겠지만) '추석'은  아버지, 어머니로서든  아들, 딸이로서든 평소에 미뤄둔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짧고 굵게 해치우는 시간이다(특히나 평소에 가족에게 소홀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린 사람들에게).연휴 4일을  거의 집에서 '특선영화' 시청과 '독서'로  채웠다(혼자).  연휴 마지막날까지 식구들과 특별히 아무 것도 안했다. 괜히 엄마한테 미안하고 찔렸다. 엄마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둘 다 역사물을 좋아하니 선택한 영화는 '사도.'  '영조','사도세자','정조'를 다룬 영화,드라마, 책은  지난 몇 십년간  꾸준히 나왔다.  내가 처음 접한 작품(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은 '영원한 제국'이라는 소설이었다.  동명 영화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4번 정도 읽었다.  '영원한 제국'의 스토리 흐름의 핵심은 '금등지사'다. '금등지사'는 영조가 죽은 사도세자를 기리며 (사관들을 피해) 비밀리에 썼다라고 하는 일종의 고백서다.'영원한 제국'은  '금등지사'를 세상에 내놓아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조와 그 반대파 노론간의 피말리는 첩보전이 주 내용이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정조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살얼음같은 정치판의 보스, 그 나머지 등장인물도  마키아벨리적 인간로서 그려질 뿐이다.  영화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더 강화되어 그려졌다.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 내 기억에 영화는  책 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릴러 넘치는 첩보 스릴러 소설이 정치영화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에 나온 많은 작품들도 그렇게 다른 시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도'에서의 세 사람은  전혀 다른 각도로 관찰된다.  정치적 인물로서가 아닌 가족으로서의  세 사람의 관계를 그려 나간다.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는  미워하나 손자인 정조는 이뻐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이고 정조를 왕위에 앉혔다. '효(孝)'를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조선에서 이만큼 비극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이 비극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하나는  '공부'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엄격함과 손자에 대한 너그러움'이다. 한국에서 공부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부모가 자식간의 관계에서 핵심적 매개체다. 공부 잘하는 자식은 대접받는다. 공부 안하는 자식은 근심거리다.  왕가라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가 바라는 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둔 만큼  자신의 출신배경에  대한 열등감이 강했고,   형 경종을 독살해서 왕이 되었다는 음모론에 재위 내내 시달릴 만큼  정통성이 약했던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한국의 자수성가한 한국의 아버지들이 많이 보이는 태도였다. '사도세자'는 그런 높은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한심했고,  사도세자는 아버지가 답답하고 무서웠다. 영조와 그의 손자 정조와의 관계는 180도 달랐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공부에 힘썼으며 할아버지 영조에게 끝까지 순종적인 모습을 보였다. 할아버지 영조도 아들 '사도세자'와 달리 학문에 힘쓰는 '정조'가 기특했다. 손자라서 더 이뻤다.  '공부'라는 것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삼부자간의 갈등,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엄격함과,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자애로움은  왕가라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효(孝)'라는 조선시대의 사회적 가치체계 기준에서  '사도세자'는  몹쓸 아들이었고, 정조는 효심깊은 손자였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세 인물의  갈등관계는 '오이디푸스'적 비극으로 치닫는다.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경쟁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적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고, 아들은 연약한 자로서 부모에게 의지해야 근근히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이 현실을 깨달은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내가 절대적 힘의 불균형이 있을 때 뿐이다.  세월이 지나면 아버지는 늙고 쇠약해지며, 아들은  크고 튼튼해진다. 아들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데 실패하는 한 긴장과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영조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던 사도세자는 영조와 다른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하고, 둘은 어느 새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정치적 적이 되어버린다. 왕조국가에서 권력이 둘로 나뉠 수 없는 법,  사도세자는 제거된다.  한편, 아버지의 비참한 말로를  두 눈으로 직접본  아들  '정조'는  철저한 충성심과 성실함을 보이며  할아버지에게 효를 다함으로써 살아남아 왕이 될 수 있었다. '사도'는 '역사'가 아닌 '인물'의 볼수 있게해주는  영화라는 점에게 기존에  나왔던 그들에 관한 작품들과'와  다른 시각이 느껴졌다.  '명랑'이라는 영화에서도 이순신을  '성웅'으로 그리기 보단, 극단적 상황에서 고뇌하는 한 명의 탁월한 '사람'으로  풀어나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사도'라는 영화도 가족이면서도 서로 권력을 다퉈야 했던 인물간의 심리와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 느껴진다.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환상과 고정관념들을 벗겨내고,  실존적 관점에서 그들의 생각과 삶을  그리려는  노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진실에 더 가까이 가고  관객들의 삶에 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사도' ,  가족에 대한 낭만을 벗겨낸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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